권영성의 작품에 내재해 있는 감상의 층위

처음 권영성의 작품을 보았던 것은 2006년 어느 화랑에서로 기억된다. 기획이 두드러지는 전시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아마도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전시였던 듯싶다. 거기에는 인체를 이어 지도의 경계를 만든, 일부러 못 그리려고 못 그린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되려다 만 것 같은 어색한 작품이 있었는데, 그 작품은 내 눈길을 끌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은 그림이기 때문에 일단 발걸음이 멈추었지만, 그의 작품 안에는, 생각이 많고 어눌한 그 무엇인가가 들어 있다고 느껴졌다. 같이 간 이들에게 이 작가를 아는가하고 물어보았지만, 아는 이들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 학부 졸업작품전에 냈던 작품이었다고 하니 아무도 모를 법 했다. 그 전시에서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권영성.


파리채반도 지도(A map of Flyswatter Peninsula)

그리고 그 다음은 조금 더 본격적으로 만났다. 2008년에 대전시립미술관의 청년작가전의 한 명으로 작품을 볼 수 있게 된 것인데, 이 전시에서 보인 작품들 역시 지도를 암시하는, 지도 형식을 응용한 것들이었다. 이때의 작품들은 지도의 등고선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가진 것들, 주름을 가진 형태들을 지도 형상로 바꾸는 패턴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손바닥의 손금이나 나무, 눈(雪)의 결정체, 핏발이 선 눈동자 등의 소재가 채택되었고, 몬드리안의 격자 그림이나 파리채를 찰싹 때리는 만화적 형상, 지도의 해수욕장을 표시하는 기호로서의 파라솔 형상 등이 그에 대한 응용편으로 등장했다. 예컨대 파리채를 찰싹 하고 내려치는 모습의 <파리채반도 지도>(2008)는 파리채를 잡은 손과 길게 뻗은 파리채가 지도상의 반도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파리채반도의 배경은 지도에서 바다를 지시하는 색채인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위에 지도 형상이 떠 있으므로, 관객은 처음 파리채 형상의 지도임을 인식하고 작품에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일단 어떤 형상이든 그것을 멀리서 인지하고 작품에 발걸음을 가까이 옮기는 순간이다. 적어도 그의 작품은 두 번의 다른 지각 방식을 요구하는데, 처음에는 그려진 형상을 보고 내가 익히 아는 어떤 형상과 매치하여 인식하는 일이고, 그 다음은 그 안에 작게 쓰여 있는 내용들을 글자그대로 “읽는” 일이다. 파리채의 파리 잡는 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리와 파리를 잡는 일에 관련된 낱말들이 지명처럼 쓰여 있다. “철썩”, “붕”, “탁”, “팍”, “이런”, “난다”, “저거”, “죽어”, “죽어라”, “플라이”, “썅”, “짜증나네”, “음식물”, “더러운”, “잡았다” 등의 낱말이 파리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가상의 지도에 지명으로 쓰여 있는 이 낱말들은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파리채를 들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았던 공통의 경험은 작가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는데, 그것은 권영성의 다른 지도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대체로 그것은 아주 미세하고 자잘하여 말할 가치가 없는 경험들인데, 이를테면 <자장면 전도>(2010)의 지명으로 쓰여진 낱말들, “단맛”, “오분”, “빨리빨리”, “양파”, “중화”, “단무지”, “느끼한” 등은 자장면과 관련된 공통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지만, 굳이 새겨볼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경험인 것이다.


무가치한 일상의 경험을 작품의 소재와 주제로 데려오는 것(굳이 ‘물신화’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상품과도 같이 매끈하게 만든 표면은 일견 팝아트적인 속성으로 인지되기도 한다. 최근의 포스트-팝 경향들이 시장에서 약진하면서 젊은 작가들이 그러한 경향으로 쏠려 있는 현상 속에 있는 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될 요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권영성의 작품이 팝아트적인, 그리고 팝아트에 영향받은 포스트-팝적인 경향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권영성은 대량소비사회의 의미 생산 구조를 탐구함으로써 미술의 의미를 재고케 하는 팝아트의 전략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세상이 어떻건 그것이 자신의 인식 구조 속에 들어오는 방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소재의 일관성이나 기법의 특수성이 아니고, 자신의 내면 인식으로 향해 있는 관점, 그것도 미세한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관점인 것이다.



그의 마이크로 퍼스펙티브가 빛을 발하고 있는 작품이 최근작인 <도로중앙선 도로도>(2010)이다. 이 작품은 최근 그의 작업실에 방문하여 처음 보았고, 오래 바라보았다. 이 작품에 이르러 권영성이 끈질기게 탐구해 왔던 방식이 비로소 다른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보였다. 사실 작품 구성의 방식은 이전과 동일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비온 후의 도로 중앙선이 가지고 있는 표면의 주름을 지도화한 것이다. 화면의 가운데 노란 중앙선 두 줄이 세로로 가로질러 있고, 그 위에는 스키드 마크가 거칠게 지나가 있다. 비가 온 뒤라는 것을 알려주는 물웅덩이의 부분이 화면의 위쪽에서 바다 역할을 하고 있고, 아스팔트는 육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달라 보이는 첫 번째 이유는, 주름진 소재의 선택에 지나치게 기대어 있는 듯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작가 자신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대담하게 표명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전작들을 바라보면서, 재미있는 방식이기는 하나 바리에이션의 가능성이 많지 않을 수 있겠다고 여겼고, 만일 다양함이 소진된 상태에서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이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실망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직 더 누릴 재미가 남아있음을 알려 주었다. 이 작품은 세 번의 다른 거리(distance)를 요하는데, 첫눈에 도로 중앙선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 다음에 가까이 다가가 그것이 땅표면의 여러 층, 아스팔트, 그 위에 중앙선, 그 위에 스키드 마크, 그 위에 물웅덩이가 생성된 시간을 담고 있고, 급하게 지나간 바퀴 자국의 불안함을 포함해 각각의 요소들에 작가가 부여하는 감정의 선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작품과 멀어지면서, 무의미한 중앙선과 바퀴자국을 작가가 오래 바라보았다는 점을 인지한 상태에서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데, 이는 처음 바라보았던 그 모양이 아니다. 잠시마나 작가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추체험했던 그 시간이 나의 경험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작품에서 멀어지게 되면, 이 작품은 아름다운 추상의 세계로 경험된다. 원색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든 추상의 화면, 실제 세계에 대한 연상, 작가의 미세한 경험 등이 한 화면 안에서 시간의 차이를 두고, 관람자와 작품의 거리에 따라서 다른 층위를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인데, 이것이 권영성 작품이 가진 미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인 것이다.


최근에 이러한 작품의 유형과 더불어 그가 실험적으로 제작하는 작품군이 있는데, 인체 해부도를 참조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올해 초 부산에서의 전시에서였는데, 좋고 나쁨을 떠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처음 놀랐던 것은 작품의 크기가 급격히 키워진 때문이었다. 그의 이전 작품은 세부를 들여다보게 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크기가 작았는데, 갑자기 관객의 신체를 압도하는 듯한 커다란 크기의 작품 앞에 서니 이전의 그의 작품에 대한 감상법은 일차적으로 버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인체가 해부되어 마치 기계 부품이 연결된 것처럼 펼쳐져 있는 이 광경 앞에서 그의 작품의 미덕 중의 하나였던 유머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유머가 빠졌을 뿐 아니라 작품에 부여하는 의미나 소재의 선택이나 그 구성이 어딘지 좀 과하게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도 따라서 경직되어 그의 작품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유형의 작품에 대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나의 근작들에서는 일련의 변화가 생겼다. 바로 지도의 사용가치에 대한 재고이다. 애초에 나를 매료시켰던 것들이 슬슬 나를 구속하기 시작했을 때 이제는 변화되어야 할 때라고 느꼈다. 길은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지루하게 했다."(권영성 작가노트, <빛 2010>전 카탈로그, 2010, p. 149)라고 고백하고 있는 바, 지도 연작의 한계 때문에 다른 시도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직 이 작품들은 이런 저런 의도를 넣었다 빼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이를테면, 작가는 원래 인체해부도에 부가되는 설명문을 같이 전시할 예정이었다고 하나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고, 앞으로 실현하게 될지도 미지수이다) 지금은 판단을 보류하기로 하겠다. 기존의 지도 방식을 따르는 재현이라는 틀이 색채와 형태에 대한 제한 때문에 작가 자신이 만든 감옥처럼 느껴졌음을 이해하겠다. 그리고 감옥을 부수고 나오는 과정에서 어느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 중임을 이해하겠다. 그래서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아야겠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첫 작품들에서 품고 있는 여러 가지의 가능성들 가운데 일부를 연장할 수도 있고 다른 방향의 도약을 할 수도 있고 혹은 헤맬 수도 있을 것인데, 조금 헤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갤러리에서 우연히 보았던 그의 첫 작품, 대부분 통과의례로 제작하는 졸업작품이었다고 하는, 하나의 작품임에도 기억에 오래 남았던, 그러나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것 같은 그 작품이 헤매임 없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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