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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성의 ‘관계 그래프’, 풍경 속 사물의 관계항 찾기

권영성은 복잡한 세계를 사물의 기호로 단순화시켜 바라보게 하는데 누구보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작가이다. 작가는 복잡성 속에서 사물의 유형이나 공통된 패턴을 찾아내고, 그 사물의 이야기를 ‘지도’라는 구체적 장소의 맥락에서 구성해내는 데 있어 그만의 독특한 시각적 유희를 생산해왔다. 사물과 텍스트가 허구의 지명(地名)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가상적 지도는 가끔씩 일종의 아나모픽(anamorphic)적인 착시효과마저 불러일으킨다.


강산과 도심지의 관계 그래프

최근의 권영성의 그래프 작업은 이전의 지도작업의 연장이지만, 지도 내부에서 ‘사물의 관계’를 찾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그래프’를 채택함으로써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항을 설정하고 주변 세계의 패턴을 드러내는 것이 더 두드러진다.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작가는 도심 안에서의 반복적인 패턴을 탐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권영성이 그린 일련의 도시의 건축물, 벽돌, 강둑, 제방의 규격화된 돌, 잔잔히 흐르는 물결의 패턴들이 실제로 일정한 음정과 박자를 갖는 질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예로 <강산과 도심지의 관계 그래프>는 대전의 갑천과 그 주변의 아파트, 강, 산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이다. 건물의 형태는 밝고 경쾌한 색채의 막대그래프로 도식화되어 있고, 고층과 저층의 동을 표시하는 듯 각각의 다른 막대들이 블록을 이루고 있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막대그래프-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아래로는 같은 크기의 강변 제방, 그것을 이루는 같은 크기와 모양의 돌, 강물의 출렁거림을 패턴화한 삼각 형태들은 다시 그림의 맨 위쪽의 산모양의 삼각 형태와 대칭을 이룬다. 한눈에 보아도 도시의 풍경을 수치, 양화(量化), 통계, 도면, 분포도처럼 배치한 인상이며, 이는 감각적인 재현이 아닌, 매우 관념적이고 오히려 ‘수학’에 가까운 사물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배수관, 가스관과 창문의 관계 그래프

그러나 감정을 차갑게 배제시킨 수학적 인식을 반영한 그림 혹은 사물에 대한 ‘권영성식의 그래프화’라고 단정 짓기 전에, 또 다른 작품 <배수관, 가스관과 창문의 관계 그래프>를 좀 더 살펴보자. 작가는 평소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고 건물 외벽의 가스관의 정렬된 모양과 배수관의 배치 그리고 창문을 살펴본 것 같다. 그는 가스관과 배수관 그리고 창문의 관계항을 그래프의 항들로 도식화한 후 도면처럼 펼쳐놓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 결과는 전자회로의 이미지와 유사해 보인다. 수학자로부터 그래프에 대해 조언을 얻은 후, 작업에 사용된 그래프들은 전문적인 그래프의 도상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 벽면을 횡단하는 가스관과 배수관을 그래프로 이미지화 한 것은 예술적인 아이디어의 발로를 넘어, 도시의 건물 외관이 어떤 식으로 배치되고 설정되는지를 ‘인식’하는 문제에 다가서고 있기도 하다. 즉 그래프가 단지 통계, 수치의 의미만이 아니라, 도심 풍경에서의 그래프의 시작과 끝이라는 ‘관계항’, 도시 건물의 혈맥들이라고 할 수 있는 파이프들이 가로지르는 ‘관계항’에 작가의 시선이 이끌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번 과학예술의 융합 작업을 통해, 작가는 그래프가 가진 본래의 의미가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아는 것, 그것이 바로 그래프에는 반드시 두 개의 항 혹은 다수의 항이 필요한 이유이다.


작가는 이처럼 그래프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가 작품에 담고자 하는 사물들의 관계의 항을 중요시 여기고 풍경 전체를 사물들의 관계의 맥락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권영성의 그래프로 담아낸 풍경은 도시내부에 깃든 사물들의 관계, 즉 도시건물과 경관의 구조를 그리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질서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반복의 패턴과 메커니즘까지도 슬며시 투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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