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처럼 보이는, 지도와 다른

지도,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한 세상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각 과목의 교과서와 함께 <사회과부도>라는 책을 받게 된다. 흰색이 많이 섞여 채도가 떨어진 하늘색과 연두색으로 된 지도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은 지리를 익히는 참고서이다. 낯선 곳에서도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지도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를 '읽는' 법을 배워야한다. ♨가 유성, 도고와 같은 온천을 뜻한다는 것을, 고속도로와 국도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익히지 못하면 지도는 알 수 없는 암호들로 가득찬 복잡한 그림이 된다. 병원, 학교, 동사무소, 유적지 등 주요 기관을 표현하는 기호, 또 도로와 철로 같은 교통로, 등고선(等高線)과 방위를 읽는 법을 배워야 우리는 비로소 지도로 옮겨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지도는 복잡한 세상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도, 세상의 넓이와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

세상의 복잡한 구성요소들 중 오직 일부만이 지도에 등장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지도는 꼭 가봐야 할 역사적 명승지와 이동에 필요한 철도와 도로처럼 그 지역을 '대표'하거나 그 지역의 '중요'한 요소를 담아서 보여준다. 여러 도시들, 도시들 간의 연결망, 학교와 공연장, 휴양지 같은 시설의 분포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과 그 연관관계를 알게 하는 것이 지도의 또 다른 기능이다.


지도처럼 보이는, 지도와 다른

권영성의 그림은 사회과부도 속의 그 지도처럼 보인다. 지도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선 색채 때문이다. <나뭇잎시 전도>나 <나뭇잎도 전도>는 밝게 빛나는 초여름 나무의 연두빛이나 투명하게 빛나는 바다의 푸른빛처럼 매력적인 색채가 아닌, 사회과부도 속의 지도처럼 흰색이 많이 섞인, 다소 바랜 듯한 색으로 표현돼있다. 그렇지만 지도처럼 보이는 더 큰 이유는 권영성의 그림이 지도에서와 같은 정연한 질서와 규칙으로 조직된 전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뭇잎시 전도>에서 잎맥을 고속도로로, 잎의 각 부분들은 더 작은 행정구역들의 형태로 표현했고, <눈동자산 국립공원 주변도>의 경우, 눈동자의 둥근 형태를 완만한 형태의 등고선으로, 핏발이 선 부분을 산으로 올라가다 끊기는 도로로 그렸다. 지도와 상관없는 자연의 산물(나뭇잎), 인체(눈동자, 손바닥)를 관찰하고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고, 그 속에 있는 작은 구성요소들과 그들 간의 관계를 그렸기 때문에 지도처럼 보인다. 나뭇잎이나 눈동자의 지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형태라면, 인공물인 파리채나 피자나 파라솔을 그린 <피자군도>와 <해수시 욕장도>는 계획적으로 정렬된 계획도시의 지도를 연상시킨다. 파리채의 손잡이는 파리채 반도로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가 되었다. 지도의 형식을 빌어, 사물을 이루고 있는 요소와 특징을 고속도로와 국도, 계획도시와 촌락과 같은 지도의 기호들을 빌려 명확히 드러내주는 것이 권영성의 그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도 속에는 '이런', '죽어버려', '짜증', '짜증나네', '귀찮은'처럼 파리채로 파리를 잡는 경험에 관련된 단어들이 분포되어 있다. 동그란 피자에서 한 조각씩 나눠서 먹게 되는 피자와 늘어지는 치즈를 여러 개의 섬으로 표현한 <피자군도>에서도 피자를 잘라놓은 조각은 고속도로, 핫 소스는 국도, 토핑이 없는 끝부분은 '밀가루 보호구역', 소스와 치즈 등으로 혼합된 부분은 '복합지'로 표시한 후, '올리브', '옥수수', '완두콩' 같은 토핑 재료들로 동네 이름을 붙였다.


그렇다면 권영성이 그린 지도 같아 보이는 그림은 보통 지도와 어떻게 다른가. 바로 일상적인 사물의 시각적 구조, 그리고 그 사물과 관련된 경험을 시각화한 것이라는 지점이다. 지도는 사람들이 각기 다르게 경험하고 기억하는 도시의 구조를 알아보기 쉽도록 최대한 단순하게 정형화시킨 것이다. 반면 권영성의 그림은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거나 무관심하게 넘겨버리는 사물의 특징과 구조를 포착하고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사전의 언어가 사물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라면, 시인의 언어는 누구나 흔히 쓰는 단어에 새로운 느낌을 덧입힌다. 권영성은 지도의 기호들이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시키는 것과 달리, 단순하고 흔한 일상의 사물-나뭇잎, 파리채, 피자-에 담긴 복잡한 구조와 관계를 밝히고, 그 사물과 얽힌 우리의 경험과 기억이 살고 있는 가상의 도시로 이끌어 시각적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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