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성의 근작, 자신의 작업세계를 찾아가기 위한 지도

권영성은 근래 몇 해 동안 그러한 지도를 그리는 작업을 해왔다. 한데, 초기 몇 점의 작품을 제외한 그의 지도는 모두 실재하는 땅의 지도가 아니라, 주변의 익숙한 사물을 소재로 만든 가상의 지도이다. 파리채, 피자, 오렌지, 담배 등의 사물, 그리고 손이나 눈과 같은 신체의 일부 등이 그것이다. 소재의 형상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육지와 바다, 산과 강 같은 지형은 물론이고 도로, 교량, 시가지와 같은 인공 구조물들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그려 넣어 마치 한 장의 실제 지도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지도에서 볼 수 있는 지명처럼, 사용한 소재와 관련된 단어들을 세밀하게 붙임으로써 지도의 느낌을 강화하여 놓았다.


실제 지도를 화면에 재현하는 것에서 시작된 이러한 그의 작업은, 매우 독특한 발상일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큰 흡인력을 지녔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일상적인 소재들을 지도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해석하고 형상화하였을 뿐 아니라, 소재의 구체적인 부분들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지도를 읽듯 흥미롭게 살펴보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 하겠다. 실제로, 거리를 두고 보면 전체적인 형상과 색채로 인해 소재가 잘 드러나는 한편으로, 가까이 다가가서는 작가가 소재의 세부를 어떻게 지도의 모습이 되도록 변형하고 꾸몄는가를 흥미롭게 살펴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작업을 할 당시에 가졌던 소재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 그리고 그 소재를 생각할 때 떠올리게 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생각들을 덧붙여 놓아 지도를 읽는(讀圖)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최근 들어 작가는 작업에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한눈에는 이제까지와 흡사한 지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지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사라지고, 도로나 구획들로 상당히 단순화되고 형식화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작업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의학용 인체해부도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작가가, 기존의 작업에 하나의 새로운 전개방향으로 택한 일련의 인체해부도의 일환이다.


다른 하나는, 지도 형식을 유지하되 소재를 구체적인 사물에 국한 하지 않고, 붓자국 등 관념적이고 비물질적인 대상으로 소재를 넓혀가는 것이다. 이는 관심사나 실생활 등 현실에 보다 밀착된 소재를 작품화함으로써, 작업 주체인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담고 이를 통해 보는 이와의 정서적 소통을 강화하려는 방식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렇게 일 년 여를 대전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작업하면서 이제까지 해오던 작업을 지속하는 한편으로,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또 다른 작업방향을 모색해 왔다. 그러한 모색은 우선, 지도 형식에서 완전히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지리를 도식화한 ‘지도’라는 한계에 구애 받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지난 수 년 간의 성과에 근거하면서 작업의 진전을 찾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라 할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작가의 근작들은 독특한 발상과 표현, 상상력을 통해 뜻밖의 것을 만나게 하는 기지, 그리고 그로 인하여 관람객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매력 등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 지금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시점에 있다.


변화의 시도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기존 작업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기존 작업을 지속하는 것이 이제까지 만큼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경우, 지도 형식의 작업을 해옴에 있어 소재의 반복에 따른 스스로의 피로감도 변화를 의식하는 계기의 하나였으리라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반복되는 형식에서 나온 문제라 할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길로서 형식에 대응하는 내용의 문제를 짚어보는 일도 의미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사물을 지도에 빗대는 표현이,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이며, 나아가 세계와 인간, 그리고 미술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하나의 의미 있는 관점, 또는 보는 방식일 수 있으며, 그렇기에 그것을 보다 예리하고 예민하게 다듬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형식과 만나 효과를 강화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한 탐구 또한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를 들면, 보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미술 내적, 혹은 외적인 문제나 사유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삶과 생활 속에서의 예민한 성찰일 수도 있으며, 또한 그 밖의 무엇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시도되고 있는 모색이 지도라는 특정한 표현형식을 만나 더욱 빛나며 보는 이에게 다가서는 특이성(specificity)를 발휘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가는 성공적인 과정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한 작가가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생각해야 할 점들은 물론 다방면에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그 가운데 이제까지의 작업을 그 시발부터 꼼꼼히 되짚어 보는 일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작업이 일어나게 된 계기로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기에 이르기까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있었던 그간의 평가와는 별도로 작가 스스로가 내리는 판단과 분석이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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